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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협·교수신문 ‘학술정책 진단’ 연속기고 ⑤연구재단 심사�
Name  학단협   (haksul2004@empal.com)
Date  2010년 11월 05일

국가기구 감독에서 벗어나야 … 연구자의 자기검열 극복 절실
학단협·교수신문 ‘학술정책 진단’ 연속기고 ⑤연구재단 심사과정
2010년 11월 01일 (월) 18:03:10 서유석 호원대· 철학 editor@kyosu.net

기초학문 성격의 인문학은 연구 성과를 실용화하여 경제적 이득을 내는 효용의 학문이 아닌 까닭에 기업이나 사설 재단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문학이 다루는 가치와 문화의 중요성 때문에, 그리고 의미 있는 성과를 산출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비용이 커서, 국가차원에서 인문학 연구를 지원하는 일은 필요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교육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파고들어 경쟁과 시장 논리를 확산하는 만큼, 사회와 국가가 나서 인문학과 인문정신의 枯死를 막는 노력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학 진흥을 위해 교과부의 위탁을 받아 시행하고 있는 인문한국사업(Humanities Korea)은 매우 중요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물론 ‘비판을 통한 가치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인문학이 국가의 연구비 지원에 의존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인문학의 국가연구비 수혜에 반대하는 논리가 있다. 알게 모르게 국가의 요구나 국가적 표준에 맞게 정형화돼 창의적 연구가 위축될 수 있고, 또 이데올로기적 제약으로 인해 비판정신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비판 대상인 ‘국가’와 ‘자본’의 통제에 오히려 굴복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주된 반대 이유다. 특히 인문한국사업은 지원규모가 적게는 과제당 수십억에서 크게는 100억을 넘는 대형 지원 사업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연구자의 권리와 자세


하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이고 따라서 연구자가 정당한 권리로서 이를 이용해야 하며, 지적된 우려들은 연구자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옛 한국학술진흥재단 출범이래 최대의 인문학 지원사업인 HK사업이 그 시행 과정에서 심사의 불공정성 문제를 야기해 큰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많은 성찰점을 제공한다. 또 앞에 지적된 문제들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란 점도 드러났다. 이미 알려졌듯이 2009년 중앙대 독일연구소의 HK 응모과제(지역연구 소형 과제), 그리고 상지대·한신대·성공회대가 공동 설립한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의 과제가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탈락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심사결과에 대해서는 늘 말이 있기 마련이다.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점도 이해한다. 학문 분야가 서로 다르고 연구주제가 다양한 만큼, 이를 일률적 표준으로 정량화해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정성평가의 경우는 심사자의 주관적 관점이 일정부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구재단이 할 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심사과정에 예상되는 이런 편향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중앙대 사태는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특정과제, 그것도 전문가의 종합적 평가에서 압도적 점수 차로 1위를 한 과제를 합당한 이유 없이 탈락시킨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최종심사라는 소위 고위 관계자 회의에서 탈락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법정에서 연구재단 측의 항변이 있었으나 대부분 설득력이 없는 논리였다. “HK 지역연구에서 우대하는 제3세계 대상이 아니었고, 지역 연구가 아닌 단일 국가를 대상으로 했으며, 주제와 관련한 기존 연구가 많고, 전문가 심사는 심사의 최종 단계가 아니다”라는 게 주된 논리였다. 하지만 ‘지역 연구는 중형으로, 단일 국가 연구는 소형으로’ 신청하라는 사업요강만을 보아도 이 논리는 억지임을 알 수 있다. 또 여러 날에 걸친 합숙 심사에서 전문가들에게 제시된 평가기준의 핵심 항목이 바로 ‘해당국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가’였다. 그러니까, ‘동일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가 많은지(과연 새로운 연구인지)’ 여부는 이미 전문가의 채점 속에 충분히 감안 된 내용이었다.

공정성·엄정성 강조하다 뒤집으면?


연구재단 심사에 참여해 본 연구자라면 다 알듯이, 심사에 공정성과 엄정성을 기해야 한다는 재단 지침과 관계자들의 주의 환기는 귀가 따가울 정도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친 결과를 재단에서 뒤집어버린 이런 일이 생기면,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의 평가는 무의미해진다.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이후의 심사도 이유 없이 의혹을 받게 되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구재단 심사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연구재단이 국가기구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국회의 의결을 거쳐 예산지원을 받되 교과부나 국회 혹은 청와대 위원회 등의 감독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구재단 스스로 자율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최대로 활용해 심사 절차와 내용의 적절성에 대한 점검을 상시화 해야 한다.


공정성 확보의 두 번째 방안은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이의신청을 받아 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다 실질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재단의 행정적 측면에서 보면 번거롭더라도 이런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면 심사과정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세 번째는 연구자들이 ‘자기검열’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연구재단에 중형 이상의 과제를 신청하려는 연구자나 집단, 중간 평가 단계에 있는 연구자나 집단 가운데, 연구재단에 건의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의 발언 자체를 자제하는 자기검열의 모습이 늘고 있다. 연구자가 스스로 위축될 경우 앞서 지적한 국가연구비 수혜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연구재단 단장들의 사퇴는 일면 불행한 일이지만, 연구재단 운영이나 과제 배분, 심사 등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일로서 필자는 이들의 사퇴 용단을 높이 평가한다.


연구재단 심사의 공정성은 연구자들이 연구재단의 사업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발언하고 제안하는 가운데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 참여와 비판, 그리고 자기검열 극복이 공정성 확보의 관건이다.

   
   
 
서유석 호원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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