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한국연구재단을 전면 개편하라
- 한국연구재단 집단사퇴 파문에 대한 민교협과 학단협의 입장-


정부의 학술연구 지원을 총괄하는 한국연구재단이 내분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다. 김문조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전횡과 독선에 반발하여 산하 5개 분야 단장들이 집단사퇴하고, 김 본부장도 내부감사 직후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본부장의 개인적 처신문제를 넘어, 그간 한국연구재단이 걸어온 파행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판단하고, 재단의 거듭남을 촉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해 6월 창립된 이후 줄곧 학계의 의혹과 불신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사장, 사무총장 등 재단의 요직을 이명박 대통령의 사람들이 차지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그치질 않았고,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특히 중앙대학교 독일연구소와 상지대, 한신대, 성공회대의 진보적 교수들이 공동 설립한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이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최종심사에서 탈락한 초유의 사태는 재단이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재단의 인문사회연구본부장과 산하 단장들 간의 갈등에서 불거진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공적 연구지원기관의 생명이라고 할 도덕성, 공정성, 투명성을 견지하지 못한 채, 정치적 편향성, 비민주성, 밀실행정의 관행을 노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의 와중에 재단 내부에서 터져나온 비판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연구재단이 조폭집단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조건 조직의 논리를 따르라는 말”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올 만큼 재단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심사, 선정 과정에서 정부공무원들의 개입이 더 많아져” 재단은 자율성을 잃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재단 운영의 핵심인 독립성, 공정성, 투명성이 이미 훼손된 상황”이라는 것이 재단 내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을 비롯한 내부 사람들 스스로가 연구재단이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이러한 부도덕한 재단이라면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번져나오고 있다.

우리는 한국연구재단의 총체적 난맥상을 내부에서 고발하고 사퇴한 단장들의 용기있는 목소리에 공감하면서, 이 나라 학술연구지원을 총괄하는 기관이 이처럼 ‘조폭적’이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경악하고, 심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을 연구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학계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소문도 바로 재단의 이러한 조직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학문의 자유가 위축되고, 학자의 양심이 왜곡되는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우리는 한국연구재단이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학술연구지원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요구를 밝힌다.

- 한국연구재단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박찬모 이사장, 배규한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 정부의 연구지원이 특정 인사의 독단과 밀실행정에 의해 좌우되는 폐단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재단의 도덕성,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2010년 7월 16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 학술단체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