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최근 사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밝힙니다 -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 꽃과 나무와도 같습니다. 험난하고 피폐했던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오직 목숨까지도 스스로 내어 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 속에서만 자신을 완성해갈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처럼 지난했던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의 역사적 의의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탄생하게 된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요, 우리 모두의 성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문제는 비단 사업회 내부 구성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이름 없이 헌신해온 모든 사람들의 문제요 관심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5년 12월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성과 공공성이 완벽히 유린되고 있다”는 최상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의 문제제기는 사태의 진실과는 별개로 우리 모두를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부의 조직운영 및 사업집행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과 양경희 전 사료수집팀장이 각각 대기발령 및 직위해제의 징계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제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사태의 본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미래에 대한 전망과 연대의 길을 함께 모색해온 ‘민주연구단체협의모임’ 소속 각 지역 연구소들은 민주화 운동세력 내부에서도 민주적 가치는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그 동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 왔으며, 또한 원만한 해결을 소망해왔습니다. 그러나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직원들에 대해 일방적인 징계 및 고소, 고발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에 맞서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 등 직원들의 농성이 시작되는 등 사태는 폭력적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언론매체 등을 통해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태가 이처럼 폭력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들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부의 구성원들은 사태해결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최근 사태를 접하며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사태가 폭력적으로 전개되면서 내부 구성원들 스스로 사태해결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주변화되거나 대상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가 결코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중요한 반증이 되고 있으며,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도 조직 내부에 존재해야 할 이와 같은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의 부재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민주적 원칙이 살아 숨쉬어야 할 공간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및 담론형성을 억압하고 방해하는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빛나는 민주화 운동의 전통에 따라 반드시 타파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의 확립을 통한 민주적 조직운영이야 말로 이번 사태의 근본해결책이 될 것이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내부의 이러한 과제를 스스로 성취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요, 우리 모두의 성지인 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현 위기는 내부에 속한 몇몇 개인의 위기가 아닌, 현재도 사회 곳곳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운동 그 자체의 위기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의 위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연구단체협의모임’에 소속된 각 지역 연구소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운동의 위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사태관련 당사자들을 면담한 후 가급적 객관적 진실에 기초해서 현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2006년 2월 3일 최상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과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또한 2006년 2월 9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과 문국주 상임이사와의 면담이 이루어졌으며, 이와 더불어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과 양경희 전 사료수집팀장을 면담하였습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과 진술을 청취한 결과, ‘민주연구단체협의모임’에 소속된 각 지역 연구소들은 현 사태의 합리적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우리의 요구사항들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사태의 당사자들에게 이의 수용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첫째, 문제가 된 ‘한일 우정의 잔치’ 사업과 관련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역할과 사업집행 절차상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공적 목적을 갖는 사업에 개인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며, 따라서 그에 따른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이에 따라 문국주 상임이사는 그 직을 사퇴함으로써 모든 의혹과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와질 것을 요구합니다.
둘째, 최상천 전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과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취하고 있는 3급 이상 직원에 대한 1년 계약직 채용방식은 그 애초의 의도와는 별개로 내부의 문제제기자들을 조직으로부터 추방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집행부가 조직 내부, 특히 최고 실무책임자들로부터 제기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수용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문제를 회피하고 지연시키다가 결국 계약종료를 이유로 이들을 조직에서 추방한 것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 행태일 뿐만 아니라 사태의 해결을 지연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사실 최상천 전 사료관장 겸 연구소장과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의 경우, 조직운영 및 사업집행 과정에 대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임원진과 다른 의견을 제출했다는 점 외에 근무태만이나 업무추진 상의 과실 및 무능력 등 객관적으로 입증될 만한 해직사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들을 시급히 원직에 복귀시켜 이사진과 전 직원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소통구조를 통해 사업회의 진정한 발전 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합니다.
셋째, 공식적 징계절차도 없이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과 양경희 전 사료주집팀장 등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자들로부터 보직을 박탈한 것은, 이들에 대한 징계사유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징계사유에 대한 당사자들의 공식적 소명도 청취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부당한 징계였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보직을 박탈하는 등의 징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징계사유가 되는 당사자들의 과실 내용이 분명하게 확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주장의 진실성 내지 허구성에 대한 확인절차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논란의 당사자인 문국주 상임이사는 배제되어야 징계절차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당사자인 문국주 상임이사가 이들의 보직을 박탈하였다는 것은 징계의 객관성과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송무호 전 사업본부장과 양경희 전 사료수집 팀장은 원직에 복귀하여야 하며 절차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징계위원회의 구성을 통해 이들의 징계를 다시 논의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넷째, 우리는 현 사태가 본질적으로는 조직 구성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현 집행부의 일방적인 하향식 조직운영과 사업집행 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근거와 기준 없이 직원들의 사직을 요구한 점, 조직의 경량화를 위해 직원들에게 사직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집행부와 친분관계가 있는 자들을 고용한 점, 모든 신입직원을 1년 계약직으로 고용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이러한 고용원칙을 철회한 점, 최고 실무책임자인 사업본부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점 등은 조직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하향식 조직운영의 대표적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결정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이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고, 집행부와 실무진 사이에 의견을 달리할 경우 이를 합리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조직운영 상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조직 내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제도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다섯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내부의 문제가 현재의 사태로 진행되기까지 이사회가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과정을 고려해볼 때, 조직 내부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이사회가 객관적 입장에서 사태의 본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는지, 따라서 조직운영 및 사업집행 과정에 관한 통제와 감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집행부와의 친소관계를 떠나 보다 많은 민주화운동 유관단체들에게 이사회를 개방함으로써 이사회의 구성 자체를 보다 다양화하고 조직운영에 관한 합리적인 통제와 감시의 틀을 제도화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2006년 4월 6일
“민주연구단체협의모임” 소속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주주의사회연구소, 대구사회연구소,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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